오장화
吳長化미상 ~ 1909. 7. 27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전북 무장 일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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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역과 출생연월일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전북 무장군(茂長郡, 현 고창군 무장면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한 이후 1907년 8월에는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킴에 따라 의병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항일투쟁의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참가 의병의 계층 또한 유생뿐만 아니라 평민과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호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전북은 김동신(金東臣)·문태수(文泰洙)·이석용(李錫庸) 부대가 대표적이었다. 전남 의병은 크게 기삼연(奇參衍)·심남일(沈南一)·안규홍(安圭洪) 부대로 대표되며, 세 구역으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특히 무장(茂長)을 비롯하여 고창 지역에서는 기삼연·전해산(全海山)의 의병활동이 두드러졌다. 일본군은 이러한 의병투쟁에 대해 러일전쟁 이후 전력의 정비를 방해하고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저지할 뿐 아니라, 제국 군대로서의 위신에 손상이 가해진다고 판단하였다. 그에 따라 실시한 이른바, 남한대토벌 작전에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10월 5일까지 1,055명을 포로로 잡아들이고, 37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일제가 남긴 『조선폭도토벌지』에서는 1906년 3월부터 1911년 6월까지 의병부대 피해로 1만 7,779명 사망, 376명 부상, 2,139명의 포로가 발생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1909년 전북 무장군 와공면(瓦孔面, 현 고창군 공음면)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7월 26일 일본 토벌대에게 붙잡힌 데 이어, 다음날인 27일 남산촌(南山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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