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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성

吳日成

미상 ~ 19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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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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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함남 영흥 일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지역, 가족 관계, 성장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없다. 의병을 시작하는 시기 역시 확인되지 않으나, 주로 1908년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일대에서 도령장(都領將)으로 활약했다. 1904년 일제는 한국을 침략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인 러시아를 제거하기 위해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전쟁을 일으키면서 한국과 한일의정서를 강제적으로 체결하여 한국의 군사권을 침탈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일 외국인 고문용빙에 관한 체결서’로 한국의 재정권과 외교권을 침탈하였다. 이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향한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나아가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까지 장악했고, 한국 군대해산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국가 존망의 위기를 직면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의병에 투신하여 한 의병부대의 도령장으로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2월 21일 10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함경남도 영흥군 하신리(下新里) 남방 요덕천(耀德川) 부근의 고지에서 설보(雪堡)를 구축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던 중에, 일본헌병에게 발각되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교전 끝에 부장(副將) 김영준(金永俊) 등 26명은 사망하였고, 40여 명은 부상을 입었다. 이때 부상을 입었고, 다른 동료 의병 6명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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