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落三
吳三187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화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화서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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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고모현면(古毛峴面) 아주동(鵝州洞, 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아주마을)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32세로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성장 배경과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07년 11월부터 경남 일대 합천(陜川)·안의(安義, 현 함양군 안의면 일대)·거창·함양(咸陽) 등에서 활약한 의병장 김화서(金化瑞)의 의병부대에 속하여 경남 거창, 삼가(三嘉, 현 합천군 삼가면) 등의 지역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09년 3월 25일, 김화서는 부하 30명을 두었으며, 김유준(金有俊)·심낙준(沈落俊)과 함께 경남 합천군 거을산면(居乙山面) 화양동(華陽洞, 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의 윤석우(尹錫佑)에게 군자금과 군수품을 받을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윤석우의 장남 윤중수(尹中洙)에게 돈 25원, 엽전 8관(貫), 물품을 받았다. 이후 같은 해 5월 18일, 삼가군(三嘉郡) 고현면(古縣面) 장기동(場基洞, 현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 장기마을) 시장에서 군수품을 모집하고자 시장 부근에서 김유준 외 2명이 시장을 정찰하였는데, 정찰하고 있던 김유준 일행이 시민에게 잡혔다. 이에 심낙준 등과 함께 김유준을 구출하고, 시장 주위를 방화하여 최재일(崔在一) 외 26명의 민가를 불태웠다. 또한 1909년 6월 19일에 합천군 각사면(各寺面) 치인동(緇仁洞, 현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불제(佛祭)에 참예인(參詣人)이 연 도박장을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김화서는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그 해 10월까지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으는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4일에 심낙준·송영수·김화서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이른바 강도·방화로 기소되어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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