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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근

吳春根

1893. 9. 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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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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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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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태극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1893년 9월 10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양화면(陽化面) 후호리(厚湖里)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파성면(把城面) 가수원리(佳水院里)이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태극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중국 린장현(臨江縣) 팔도구(八道溝)에 본부를 두고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조인관(趙仁官)·정삼승(鄭森承) 등이 중국 창바이현(長白縣)과 린장현을 중심으로 조직한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단장은 임상우(任尙祐)였다. 이때 태극단에서 상등병 직임을 받아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임석우의 명령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대원 47명과 함께 무기를 가지고 국내에 들어가, 평북 후창군(厚昌郡) 부근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이영식(李永植) 외 몇몇 부호로부터 180여 원의 금액을 모집하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한 활동을 계속하던 가운데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남신주재소 소장 다카다(高田) 순사부장 외 5명과 교전을 벌이다 순사부장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평남 영원군(寧遠郡)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다가 1924년 8월 함남 원산에서 평강경찰서 경찰에 붙잡혔다. 1925년 3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살인죄, 강도죄 등으로 징역 13년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32년 2월 1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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