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순
吳昌淳189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흥업단
- · 광정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영성주재소 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장양면(長陽面) 하북점리(下北占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6년 당시 37세인 것으로 보아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오창순(吳昌順)과 오덕준(吳德俊)을 사용하였다. 1919년 8월경 서간도 창바이현(長白縣)으로 건너가 흥업단(興業團)에 참여하였다. 흥업단은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 김호(金虎)·김혁(金赫)·윤세복(尹世復) 등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독립군단은 푸쑹현(撫松縣)에 본부를 설치하고, 한국의 혜산군(惠山郡)과 접해있어 국내 진입이 용이한 창바이현에는 지단(支團)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흥업단 지단의 단원이 된 것이었다. 흥업단의 항일무장활동은 푸쑹현의 본부보다 창바이현 지단이 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창바이현은 국경과 접해있고 백두산 자락이 뻗쳐 많은 계곡을 만들고 있어 국내 진입 유격전을 목표로 한 독립군의 근거지가 구축되기에는 큰 이점이 있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곳에는 흥업단 이외에도 대진단(大震團)·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 여러 독립군단의 본부 또는 지단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흥업단 지단은 효율적인 항일무장활동을 위해 1921년 1월 15일 이들 독립군단들과 독립군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연합회가 통신 연락 업무를 비롯해 항일 유격대 구성, 군자금 모집 등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이자 흥업단을 비롯한 창바이현의 독립군단들은 완전 통합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1922년 4월경 통합 독립군단인 광정단(光正團)을 탄생시켰다. 여러 독립군단의 통합체였기에 광범위한 지역을 기반으로 갖게 된 광정단은 창바이현에 중앙 조직인 총부와 서(署)라 이름붙인 4개의 지방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린장현(臨江縣)과 푸쑹현에도 지방 조직을 구축하였다. 단장 윤덕보(尹德甫)와 부단장 강건(姜健)이 있는 총지휘부인 총부 밑에는 재무·군사·서무·경호·의사·권업·문화·통신·회계·위생 등의 부서가 편성되었다. 이들 부서는 하나의 중앙 조직이었으나 한 곳에 있지 않고 창바이현 내 여러 지역에 분산 배치되었다. 이들 부서 중 창바이현 16도구(道溝) 신창동(新昌洞)에 근거지를 둔 군사부 소속의 독립군 대원이 되었다. 광정단이 성립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은 1922년 9월 하순 국내에 특파될 결사대가 결성되었다. 38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결사대였다. 이 결사대의 일원이 되어 국경을 넘어 함남 삼수군(三水郡)으로 들어갔다. 9월 25일 새벽 4시 결사대는 삼수군 호인면(好仁面) 영성리(嶺城里)에 있는 영성주재소를 기습 공격하였다. 결사대는 순식간에 순사부장 마쓰이 다카시(松井孝)를 처단하고, 일본인 순사 호리우치 소우조(堀內宗三)와 한국인 순사 김동정(金東珽)에게 중상을 입혔다. 무기를 탈취해 주재소를 나온 결사대는 바로 옆에 있는 순사 이석윤(李錫潤)의 집으로 들어갔다. 주재소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자 이석윤은 황급히 도망갔고, 그의 처 최성녀(崔姓女)만 있었다. 대원들은 최성녀에게 독립군임을 알리고 이석윤의 순사복 2벌과 검 한 자루, 현금 3원을 군자금으로 받아 나왔다. 작전을 마친 결사대원들은 무사히 본부로 귀대하였다. 1924년 하반기 광정단은 남만주지역에 근거지를 둔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 등 7개 한국독립운동 단체들과 통합운동을 전개해 그해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1924년 초까지 광정단 군사부 소속 독립군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어 정의부에도 소속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자료의 한계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활동은 확인하기 어렵다. 일제의 만주침략으로 ‘만주국(滿洲國)’이 생기고 난 이후인 1936년 4월 15일 창바이현 14도구에서 안동경찰서 장백파출소 소속 경찰대에 붙잡혔다. 만주를 장악한 일제는 이 지역 곳곳에 무력을 증강시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했는데 이때 붙잡힌 것이었다. 붙잡힐 당시도 창바이현이었기에 만주로 간 이후 거의 창바이현을 무대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성주재소 습격을 비롯하여 그 밖의 항일활동까지 추궁당해 1936년 11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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