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오창근

吳昌槿

1900. 5. 19 ~ 1968. 10. 2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창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선천(宣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국민부
  • · 황푸군관학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0년 5월 19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용연면(龍淵面) 향산동(香山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오창근(吳昌根)과 오세진(吳世振)을 사용하였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참여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중 황푸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에 진학하여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국민부(國民府)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한 뒤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군정서(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대한광복군영(大韓光復軍營) 등 남만주 지역의 주요 독립운동 단체들이 더욱 효율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한 통합 단체였다. 1924년에는 중국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의 군관교도대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에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 소재한 황포군관학교에서 1926년 3월부터 10월까지 교육을 받은 후, 포병과 제4기로 졸업하였다. 황포군관학교의 한국인 입교생과 교관들은 교장 장제스(蔣介石)의 양해를 받고 혁명군인회(革命軍人會)라는 독자 조직을 결성하였다. 혁명군인회에서는 중국 남부 지역의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고, 비밀리에 입교생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130여 명의 회원 중 한 명이었다. 졸업 후 우한(武漢)의 국민혁명군에서 복무하였으며, 항일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한편 소속되어 있었던 대한통의부는 몇 차례의 내부 분열을 겪은 뒤 1925년 11월 조직된 정의부(正義府)에 거의 흡수된 상태였다. 그 역시 정의부로 소속을 옮겼으며, 1928년 5월 정의부에서 유일당을 결성하기 위해 추진한 전민족유일당조직회(全民族唯一黨組織會)에 정의부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1929년 정의부·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 3부가 통합하여 국민부를 조직한 이후부터는 국민부 소속으로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