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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화

吳仁華

1893 ~ 193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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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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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진남포(鎭南浦)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진남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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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지린 한교문제연구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63) 평안남도 진남포(鎭南浦) 출신이다. 1931년 사망 당시 39세인 것으로 보아 1893년생으로 추정된다. 삼숭학교(三崇學校)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서울의 경신학교(儆新學校)를 나왔다. 평양에서 연통제를 실시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된 차병수(車炳修)와 관련된 사건에 연루되면서 펑톈(奉天)을 거쳐 지린(吉林)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명동학교에서 교사로 잠시 일하다가 성립우급사범학교(省立優級師範學校)를 마치고 중국 신문 『길장일보(吉長日報)』의 기자로 일하였다. 또한 지린성 고등법원의 일문(日文) 번역관으로, 공안국의 총무과에서 일하였다. 이와 같이 지린성 관청 교섭국 통역으로 일하면서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중국 관헌에게 붙잡힌 한인들의 방면을 위해 힘썼다. 1923년 4월경 제중병원 의사 김영철(金永哲), 고려공산당원 나학초(羅學礁) 등 10여 명과 함께 비밀결사 교통부(交通部)를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러시아에 있는 여러 독립단들과 연락을 취하며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김좌진(金佐鎭) 등 독립군단의 인물들과도 교류하였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활동에도 참여하여 같은 해 12월 25일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푸저우(福州)에서 개최된 기독교동아총회(基督敎東亞總會)에 봉천 대표로 참석하였고, 1928년 1월 상하이에서 열린 감리교동아회(監理敎東亞會)에 조병옥(趙炳玉)·김활란(金活蘭) 등과 참여하였다. 1927년 1월 27일 안창호를 비롯하여 만주 지역의 독립단 간부들이 독립운동 단체의 통일과 민족유일당 결성 논의를 위한 길림 조양문 밖 대동공창(大同工廠)에서 회의를 하다 중국 경찰에 붙잡혀 길림경찰서에 구금되는 이른바 ‘길림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베이징(北京)의 장운책(張雲責)·심용해(沈容海) 등이 중국의 정계 원로인 시옹시링(熊希齡)과 장쭤린(張作林)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신문사들에 접촉하여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일본 공사 요시자와 겐기치(芳澤謙吉)의 인도 요구의 부당성을 역설할 때, 함께 석방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던 이들이 21일 만에 방면되는 데 기여하였다. 1928년 2월 지린에서 한교문제연구회(吉林韓僑問題硏究會)를 결성하고 최동오(崔東旿)·김강기(金剛己)와 함께 대표로 펑톈성장의 공서(公暑)도 방문하여 펑톈성장과 면담하였다. 그 자리에서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 조직을 통해 한인의 지방행정 보조를 요청하는 한편 한중 협력을 통한 한인에 대한 보호를 약속받았다. 같은 해 5월 정의부·참의부·신민부 3부의 주요 인사가 모여 통합을 위한 비밀회의를 개최한 것이 드러나 일본과 중국의 공동수사가 이루어지자 독립군 대표들에게 긴급 경보를 보내 그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30년 간도공산당사건 이후 지린성 정부에서 한인 통치에 대해 논의할 때에 교섭서 과원으로 한인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1931년에는 옌볜(延邊) 지역 한인의 상황과 지방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특파되었고, 이를 통해 옌볜 행정 개선을 위한 건의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다. 건의안을 통해 간도 주민 중에 지도원을 임명할 것, 교육 주관 기관을 설치하고 중국인과 한인을 균등 채용할 것, 지방자위단에 지방 은행 설치를 통해 빈곤을 구제할 것, 간도 주민을 관서에 채용하여 행정 사무를 보조하도록 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한인의 생활 개선과 독립운동을 전면에서 때로는 은밀하게 지원하였다. 그러나 1931년 4월 16일 지린 상부지(商埠地)의 길원정미소에서 지린 조선인 민회장 김정원(金正元)이 쏜 권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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