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
吳達洙1907 ~ 1940. 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관련 사건
- · 조선혁명군 국내공작위원회 조직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7년 당시 31세인 것으로 보아 1907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오달수(吳達秀)를 사용하였다. 1937년 당시에는 신의주부(新義州府) 노송정(老松町)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5년 (음)1월 조선혁명군에 가담하여 콴뎬현(寬甸縣)·환런현(桓仁縣)에서 활동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20년대 후반 민족유일당 운동의 결과로 구성된 남만주 지역의 국민부(國民府)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산하 군대조직으로 1930년대에 걸쳐 남만주 일대에서 꾸준히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만주사변 이후 만주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는 등 만주를 근거지로 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면서 조선혁명당은 중국의 항일의용군과 연대하여 중한항일동맹회(中韓抗日同盟會)를 결성하는 한편, 항일 투쟁의 근거지를 국내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국내공작위원회를 설치하여 국내 침투공작을 강화하고자 하던 중, 1936년 10월 조선혁명당 정치부 비서과장 윤영배(尹永配)를 비롯한 단원 6명을 국내공작 재개를 위해 국내로 들어갈 때 함께 파견되었다. 국내공작을 위해 ①노동자·농민·도시소시민의 혁명적 인텔리겐차를 규합할 것 ②노동자·농민으로 조합을 조직하여 그 세력 증대를 도모할 것 ③도시소시민의 혁명적 인텔리겐차는 지도적 계급으로 하급군중을 지도하고, 시기에 따라서 농민·노동자로 하여금 각종 쟁의를 일으켜 투쟁세력을 배양할 것 등의 실천지침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평양으로 가던 도중에 일행과 함께 붙잡히면서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1937년 7월 동지들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살인, 공갈, 약탈 등으로 공판에 회부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고문 후유증으로 중병을 얻어 1940년 2월 23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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