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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근태

吳根泰

1882 ~ 194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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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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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華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화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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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종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임오교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화천면(華川面) 풍산리(豊山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44년 사망 당시 63세인 것으로 보아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성범(聖範), 호는 죽포(竹圃)이다. 전통 유학 교육을 받고 성장했으며, 자라서는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대종교 간부로 활동하였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羅喆)이 창시한 종교로, 조선 민족의 국조(國祖)인 단군을 교조(敎條)로 하였다. 강제병합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자, 제2대 교주가 된 김교헌(金敎獻)은 1916년 만주로 총본사(總本司)를 옮겼다. 만주에 자리를 잡은 대종교는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대종교에 입교한 것은 1914년이었으나, 대종교 활동에 전념한 것은 1924년경부터였다. 1917년 고향을 떠나 만주 펑톈성(奉天省) 창바이현(長白縣)으로 이주하였으며, 1918년에는 현립제이정몽학교(縣立第二正蒙學校)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9년 7월에는 푸쑹현(撫松縣)으로 옮겨 대종교 계열 인사들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인 흥업단(興業團)에 가담하였다. 1924년에 ‘교리에 숙달한 자’를 이르는 지교(知敎)에 임명된 후부터는 지린성(吉林省) 닝안현(寧安縣)에서 포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1942년에는 최고 품계인 정교(正敎)가 되어 대형(大兄)의 칭호를 받았다. 약 18년 동안 대종교 교적인 ‘홍범규제(弘範規制)’ 수정위원, 경의원(經議院) 참의(參議) 등 여러 직무를 맡았다. 일제는 대종교를 조선 고유의 신앙으로, 단군문화를 다시 발전시킨다는 이유에서 “조선 민중에게 조선 정신을 배양하고, 민족 자결의 의식을 선전하며 조선 독립을 그 최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규정하였으며, 대종교가 만주로 이동한 후에도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1926년에는 지린성장(吉林省長) 장쭤샹(張作相)을 압박하여 ‘대종교 포교금지령’을 내리게 함으로써 만주의 도본사 3곳이 해체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42년 11월 19일 이른바 잠행징치반도법(暫行懲治叛徒法) 위반이라는 이유로 제3대 교주 윤세복(尹世復)을 비롯하여 국내와 만주의 대종교 지도자 수십 명을 검속하였다. 당시 대종교 본사가 있던 만주 동경성(東京城)에서 단군의 천전(天殿)을 짓기 위한 건축주비회(天殿建築籌備會) 총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가 닝안현 와룡둔고가자(臥龍屯孤家子)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닝안현 경무과에서 4개월, 목단강 경무처에서 9개월 동안이나 혹독한 조사와 갖은 고문을 당하였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1월 5일에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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