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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영

吳寬泳

1901. 2. 8 ~ 198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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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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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원(平原)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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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평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901년 2월 8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순안면(順安面) 관북리(館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오갑(吳甲)·오야관영(吳野寬泳)을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70도(度)를 받았다. 1921년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형섭(趙亨涉)·조원섭(趙元涉) 형제와 선우신(鮮于信) 등과 함께 대한광복군총영에서 발행한 문서와 탄환을 가지고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광복단총영은 1920년 3월 의용대를 개칭한 광복단이 조직 주체가 되어 오동진(吳東振)·조맹선(趙孟善) 등을 중심으로 1920년 7월 초순 안둥현(安東縣)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다른 독립운동 단체와 같이 군자금을 모집하여 무기를 구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만주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로 진입하여 지회를 설립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9월부터 조형섭과 함께 광복군총영의 사항을 전달 받고, 안전을 위해 총을 휴대하고 같은 해 10월 1일 평원군 양화면(兩花面) 옥정리(玉井里)에 있는 김병건(金炳健)에게 급고경고문(急告警告文)을 발송하고 군자금 300원을, 10월 10일에는 순안면(順安面) 사직리(社稷里)에 있는 김병룡(金炳龍)에게 같은 방법으로 군자금 400원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 후 택엄리(宅奄里)의 석근옥(石根玉)과 신안리의 김학용(金學鏞)에게서도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1921년 11월 초 순천(順川)에서 조형섭·선우신·김인진(金仁鎭) 등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2년 3월 1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총포화약력취체규칙 위반, 공갈미수 등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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