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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泰敏

泰敏

1885 ~ 1920.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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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廉泰敏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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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35세인 것으로 보아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항일 활동을 하던 중 희생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해졌다. 더불어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을 작성하고,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과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의 북간도 지역 ‘토벌’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제1기 토벌 때,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는데,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전투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이때 만주에 남아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황구(黃溝) 부근의 지방구장으로 항일 활동을 하다가, 1920년 11월 10일 훈춘현 두도구(頭道溝)에서 일제에 의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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