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석규
魏錫奎1878. 3. 2 ~ 1913. 6.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최익현 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8년 3월 2일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관산읍(冠山邑) 당동(堂洞)에서 위윤조(魏胤祚)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여장(汝章), 호는 덕암(德菴)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홍의재(弘毅齋) 위봉(魏棒植)과 명강(明岡) 백봉흠(白奉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이 을사조약의 강제체결에 비분하여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민영환의 영정에 조문한 뒤 귀향하였다. 1906년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전북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키며 호남 각지에 격문을 보내 동참할 것을 촉구하자 이에 호응하여 최익현 의병부대에 투신했다. 그러나 1906년 6월 의병부대가 해산되고 최익현이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에 국내에서는 더 이상의 항일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몸을 대신할 손발톱과 머리카락 등 유물과 유서를 남기고 중국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때 남긴 유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짐승(倭)이 사람과 영토를 침탈하니 장차 모두 죽겠도다. 슬프다. 오국(吾國)이 도수(盜獸)들의 노략으로 국가가 존망지추(存亡之秋)에 다달아 백성이 진멸(盡滅)케 되었으니 우리들은 팔을 걷어 주먹을 쥐고 용약분투(踊躍奮鬪), 만사일생(萬死一生)의 각오로 영토를 지키자. 사람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대의를 따르면 사람이요 사욕을 채운다면 금수(禽獸)다. 고금을 막론하고 국난을 당하여 국가사직을 붙잡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분강개(義憤慷慨) 일어서면 모두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만주에서 청나라 요로에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도움을 받아 일제를 타도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박태문(朴泰文)·강명운(姜明雲)·국사성(鞠思成) 등의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항일운동을 펼쳤다. 항일운동 과정에서 병을 얻어 1913년 6월 1일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사망하였다. 니콜스크-우수리스크 한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고향에서는 20년이 지난 1933년 유품으로 대신 장사를 지냈다. 저서로 『덕암유고(德菴遺稿)』와 『덕암선생문집(德菴先生文集)』 등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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