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석
吳雲錫1899. 4. 24 ~ 1959. 10.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31년 강진군 군동면 소작료인하궐기대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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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9년 4월 24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군동면(郡東面) 덕천리(德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오완석(吳完錫)이 있다. 1931년 11월 강진군 군동면에서 소작료인하궐기대회 및 겸전산업회사(鎌田産業會社) 소작쟁의를 주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31년 11월 16일 강진군 군동면이 심한 흉작으로 인해 생산량이 40%로 감소하자 소작인 300여 명과 함께 나천리(羅川里) 옛 학교 건물에 모여 소작료인하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궐기대회에서는 읍내 대지주들을 비롯한 농장회사를 상대로 소작료 20%의 감하를 요구하였다. 만약 지주 측에서 요구 사항을 거부할 경우 소작료를 내지 않기로 결의했으며, 위와 같은 소작인들의 사정을 도 당국에 진정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군동면에서 소작료 인하를 둘러 싼 소작쟁의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인 농업회사인 겸전산업회사는 한국인 소작인들의 소작료 인하 요구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에 1931년 11월 28일 소작료 교섭을 위해 조정구(趙政九)·마성만(馬成萬)·마상춘(馬相春) 등을 비롯한 겸전산업회사 소작인 170여 명과 함께 겸전산업회사 목포지점 강진출장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겸전산업회사가 소작료 교섭에 계속 불응하는 등 무성의하게 대응하자 양측 사이에서는 고함이 오가며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이때 선두에 서서 강진출장소 직원인 일본인 나카시게(中繁) 등을 구타하여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중상을 입혔다. 겸전산업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작쟁의가 격렬해지자 강진경찰서에서는 자동차를 동원하는 등 급하게 출동하여 소작쟁의에 참가한 소작인들을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붙잡기 시작하였다. 이때 다른 11명의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강진경찰서에 구금당하였다. 이어 소작인 500여 명은 1931년 11월 28일 오후 10시경 강진경찰서로 몰려와 일제 경찰들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붙잡힌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강진경찰서는 전 병력을 동원하여 소작인들을 무력으로 해산시켰고, 현장에서 58명을 붙잡고 재향군인, 해남(海南)과 장흥(長興)경찰서로부터 병력을 지원 받아 강진경찰서의 경계를 강화하였다.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목포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1년 후인 1933년 3월 10일 풀려났다. 출옥 후에는 함께 소작쟁의를 주도했던 조정구·마성만·마상춘 등과 함께 강진군 군동면의 사회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전남운동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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