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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惠茂

惠茂

1889. 12. 26 ~ 192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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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惠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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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9년 12월 2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강리(松江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에서 서당 훈장으로 활동한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에 공감하여 금마면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 평소 교류 관계가 깊었던 인물들과 의기 투합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논의를 통해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만세운동의 거사일인 4월 1일 연극공연에 관객으로 입장해 있던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 등은 만세운동의 기회를 엿보다 오후 8시경 객석에서 일제히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연극을 보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30여 명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동참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체포자 없이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는 것으로 끝났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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