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冕永
冕永1873. 12. 1 ~ 1931. 9.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광주군 오포면
- · 경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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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3년 12월 1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오포면(五浦面) 양벌리(陽伐里)에서 태어났다. 유림 출신으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28일 광주군 오포면에서 시작해 경안면 광주군청 앞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27일 주민 40여 명이 광주군 야산에서 횃불 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서북면 사무소와 상일동 헌병주재소로 행진하면서 시위인원은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면사무소와 헌병대에 투석하던 중 일제 헌병의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러한 지역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3월 28일 오전 오포면 양벌리(陽筏里) 오포면 사무소에 600여 명을 모아놓고 “경술국치 이래 벌써 10년이 되었소. 이제는 틀림없이 독립하게 되었소. 여러분과 나는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독립만세를 불러야 하겠소”라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러자 군중들도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다시, “이제부터 광주군청으로 갑시다. 경안면(京安面)에서 헌병이 총을 쏜다 하여 물러가서는 안 되오. 우리가 모두 일심동체가 되면 그들도 우리를 체포하지 못하오”라며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광주군청으로 향하였다. 오후 1시 30분경 광주군청 앞에 도착하였다. 태극기를 앞세우며 군수와 군청직원들에게 시위에 가담할 것과 군수에게 한국독립의 승인 날인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광주군청과 우체국에 투석하는 등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발포로 6명이 총살당하고 10명이 부상당하였다. 곧바로 해산하지 않고 경안리(京安里) 부근에서 시위를 이어나갔다. 광주의 격렬한 만세시위로 경성헌병대 사령부에서는 일부 병력을 광주군으로 파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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