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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복생

元福生

1892. 6. 17 ~ 1937.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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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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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원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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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南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남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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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남해군 남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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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6월 17일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남해면(南海面) 북변리(北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원복상(元福常, 元卜相)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남해군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남해군 만세운동은 하동군(河東郡) 만세시위의 영향을 받았다. 남해군에서 1919년 4월 2일부터 6일에 걸쳐 집중적으로 일어난 만세시위는 설천면(雪川面)의 이예모(李禮模)가 하동에서 독립선언서를 구해오면서 시작되었다. 4월 4일 전개된 남해면 읍내시장 만세시위는 3일 설천면 남양리(南陽里) 만세시위와 연속되는 것이었다. 오후 3시 이예모·정순조(鄭順祚) 등은 시위 군중들을 이끌고 고현면(古縣面)에 도착하였지만, 면장인 김치관(金致寬)이 이미 남해경찰관주재소에 시위 발생을 알렸다. 시위 주도자들은 일단 시위를 중단하고 읍내 시장 장날인 4월 4일 다시 모여 시위를 재개하기로 하였다. 4월 4일 전날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남해면 읍내시장으로 갔다. 시장에는 설천면·고현면 주민을 중심으로 전날 시위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장꾼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장터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오후 2시부터 독립선언서를 읽고 만세를 선창하는 것으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장대에 높이 단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시위대를 지휘하여 읍내 중심가를 행진하였고, 주재소·군청·우편국 등으로 이동해 만세를 부르며 의분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농민 수탈의 상징이었던 금융조합 사무실에 들어가서 기물을 파손하고 직원들을 데리고 다시 장터로 와서 수많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였다. 시위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으나 날이 저물고 사천(泗川)경찰서에서 강제 해산을 위해 대규모 지원 병력을 파견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그러나 사천경찰서 증원 병력과 일본군 헌병 10여 명도 파견되어 4월 6일까지 주도자 검거에 나섰고, 결국 유찬숙(柳贊淑)·정순조·이예모·윤주순(尹柱舜) 등과 함께 모두 23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일제 군경의 고문을 동반한 혹독한 심문을 거친 후 치안을 방해한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부터 8월까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열린 재판에서 관련 인사 대부분이 2년 전후의 중형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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