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익삼
吳益三1886. 9. 1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안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86년 9월 12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안성군 원곡면·양성면 일대에서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말부터 본격화되었다. 4월 1일~2일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원곡면 칠곡리(七谷里)의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과 내가천리(內加川里)의 이덕순(李德順), 외가천리(外加川里)의 이근수(李根洙)·최은식(崔殷植)·이희용(李熙龍) 등은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이도록 고무하였다. 이에 1,000명의 주민들이 이날 밤 8시경부터 원곡면사무소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경찰관주재소가 있는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로 향하였다. 이 때 양성면 일대의 주민들이 합세하여 규모는 2,000여 명에 달하였다. 주재소 앞에 모인 사람들은 재차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 다음으로 양성우편소로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만세를 외치는 가운데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우편소 집기를 파괴하였으며, 전신주 3기를 넘어뜨리기도 하였다. 아울러 일부는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 잡화상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에 찾아가 이불, 서적, 시계 등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만세운동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시위대는 다시 원곡면사무소로 향하여 만세를 외친 후 숙직실과 사무실 집기 등을 불태웠다. 안성 일대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지던 초창기부터 활동하였다. 3월 28일부터 이덕순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가담하였으며, 4월 1일 밤에는 양성면의 주재소와 우편소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가 양성주재소를 공격할 당시 군중과 함께 돌을 던져 주재소 사무실의 유리를 파손하기도 하였다. 붙잡힌 후,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하였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인들의 사법 절차 지적 법정투쟁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홍석⋮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