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翰鍾
翰鍾1879. 11. 1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이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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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1879년 11월 18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대화리(大禾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월 일어난 함경남도 이원군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정확한 참여일은 확인되지 않는다. 함경남도 이원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 기독교 신자 박용해(朴龍海)가 가져온 독립선언서가 이원 천도교구장 김병준(金秉濬)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되었다. 김병준은 이도재(李道在) 등과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이원 읍내에 배포하기로 결정하고, 3월 8일 천도교구실에서 약 500매를 등사하였다. 3월 9일에는 만세시위 계획이 읍내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전달되었고 이어 3월 10일에는 오전 11시반 무렵 서면(西面) 이원 읍내에서 천도교인 등 약 800명의 시위 군중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11일에는 동면 상선리(上仙里) 군선항(群仙港)에 약 100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같은 날 남면(南面) 차호 시장(遮湖 市場)에서는 약 1,000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차호 시장을 출발하여 차호헌병주재소(遮湖憲兵駐在所), 면사무소, 기독교회당 등을 행진하고 오후 4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3월 12일 남면에서는 차호리(遮湖里) 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천도교 교인 등 2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동면에서는 먼저 3월 14일에 천도교도, 학생 등 70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3월 17일에는 오후 2시경 용암리(龍岩里) 동면 면사무소에서 400명의 면민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고, 다시 곡구(谷口)로 이동하여 시위를 계속하였다. 3월 20일에는 서면 이원읍내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다. 오후 3시 반 무렵, 이원 읍내에 모인 1,500여 명의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고 이원헌병분견소에 붙잡혀 구금된 사람들을 탈출시키기 위하여 분견소를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헌병들이 총을 쏴서 사망자가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그 날 4시 반경 해산하였다. 이원군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후 상고하였으나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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