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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錫漢

錫漢

1880 ~ 1919.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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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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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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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단천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신만면(新滿面) 개평리(開坪里) 출신이다. 아버지 염학진(廉學振)과 어머니 전주 김씨 사이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880년 출생으로 추정된다. 셋째 동생은 파도면 만세시위에서 함께 사망한 염석하(廉錫河)이다. 1919년 3월 10일 전개된 단천군 파도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헌병의 발포와 무력 진압으로 희생되었다. 함경남도 단천군의 만세시위는 3월 10일 파도면(波道面)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함경남도 단천군에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 소식이 전달된 경위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러나 단천군 만세운동을 천도교인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에서 볼 때, 천도교 인사들이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휴대하고 3월 1일을 전후로 서울과 원산에서 단천군으로 가서 그 지역 천도교 인사들에게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와 관련해서는 안성교(安聖敎)의 3월 초순 행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19년 3월 안성교는 단천군의 천도교인으로서 대서업(代書業)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3월 3일을 전후로 독립만세시위 소식을 접하였으며 다음날인 3월 4일에는 『매일신보』를 통해 만세시위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에 안성교는 서울로 올라가 만세시위에 찬동하기로 결심하며, 그런 와중에 3월 8일에는 단천군 천도교 교구장 염원형(廉元亨)이 주재하는 회합에 참여해서 천도교가 중심이 되는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 날 파도면 만세시위가 계획되었으며, 3월 8일 단천군 천도교 교구장 염원형은 안성교를 비롯해서 천도교회 서기 설운룡(薛雲龍), 약재상 최덕복(崔德福), 농업에 종사하였던 최석곤(崔錫崑) 등과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순도기념일(殉道記念日)인 3월 10일을 맞이하여 단천군 파도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염원형의 지시를 받은 최석곤과 설운룡은 독립선언서 200장을 등사하였고, 그 날 참석한 인사들은 천도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3월 10일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다음날 안성교는 서울행을 시도하면서, 오후 3시 무렵 이원군(利原郡)에서 그 지역 천도교구장 김병준(金秉濬)을 만나 3월 10일에 이원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이라는 계획을 들은 후, 서울로 향하고자 했으나 일제 군경의 삼엄한 경비로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에 서울행을 포기하고, 3월 10일 오전 10시 전후로 단천군으로 돌아와 파도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0일 셋째 동생 염석하와 함께 단천군 파도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 날 오전 11시를 전후로 300여 명의 천도교 신자들이 단천군 천도교구실에 결집하여 염원형의 주재로 최제우 환원(還元) 제25회 기도회가 열렸다. 기도회를 마친 후 염원형은 금일 독립만세시위에 대한 설명과 행진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을 천도교 신자들과 군중들에게 전달하였다. 뒤이어 시위를 주도한 염원형·최석곤·설운용·안성교 등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0일 파도면 만세시위에는 1,000여 명의 천도교 신자들과 군중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날 시위대와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단천군 천도교구실에서 읍내 시장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의 행진이 남문을 지나서 읍내 주남리(州南里)에 이르자, 일제 헌병이 시위대의 진출을 가로막고 해산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설운룡을 비롯한 시위대는 어떠한 방식으로 해산을 명령하고 또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결코 헌병의 명령에 따르지 말고 대항하라고 외쳤으며, 최석곤도 헌병의 말을 절대 듣지 말고 끝까지 저항하자고 소리쳤다. 이때 시위대의 일원으로 일제 헌병에 대항하여 돌을 던지는 투석전을 실시했으며 헌병을 향해 막대도 휘둘렀다. 시위대 일부가 헌병이 소지한 무기를 탈취하려고 하자,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총격을 가하고 총검 등 무력을 이용하여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이로 인해 동생 염석하와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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