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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象五

象五

1885. 11. 26 ~ 1919.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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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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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論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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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논산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5년 11월 26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현 論山市) 광석면(光石面) 항월리(恒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염승필(廉承弼)과 염중오(廉衆五)를 사용하였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2일 논산읍(論山邑, 현 논산시 취암동과 부창동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논산 지역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은 1919년 3월 10일이었다. 이날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의 교사 엄창섭(嚴昌燮)을 중심으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 등은 강경면(江景面)의 장날을 이용하여 논산 지역 최초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부터 이틀 후인 3월 12일 논산읍에서 천도교도들의 주도로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천도교 논산교구장 손필규(孫弼奎)는 천도교도들에게 3월 1일 이후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의 취지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전달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논산의 만세시위를 조직하였다. 이때 손필규의 제안에 따라 김태호·이백순·박용진(朴容鎭) 등과 함께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들과 함께 논의하여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3월 12일로 결정하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3월 12일 손필규·김태호·이백순·박용진 등 동지들과 함께 강경면에서부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미 이틀 전에 만세시위를 경험한 강경면 주민들 앞으로 나아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주민들에게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주민들과 학생 100여 명이 만세시위의 취지에 공감하여 동참하였다. 이들에게 사전에 제작한 태극기를 배포하고, 손필규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열을 갖추고는 ‘대한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연창하면서 시위대와 함께 논산 읍내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대가 행진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외치는 ‘대한독립만세’ 구호에 공감한 논산의 주민들이 속속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강경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할 때보다 이미 10배 이상의 대규모 만세시위대로 늘어난 것에 감동하면서 이들과 함께 논산 읍내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전부터 일제 식민통치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천도교 세력이 강한 논산 읍내에서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헌병대가 곧바로 출동하여 시위를 중지하고 즉각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를 무시하고 손필규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다른 주민들을 독려하며 만세를 더욱 크게 외치면서 시위를 지속하였다. 만세시위대의 완강한 태도를 확인한 일제 헌병대는 당시의 만세시위가 비무장이며, 평화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무차별적인 총기 발포로 대응하면서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의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이끌던 중, 일제 헌병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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