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萬興
萬興1878 ~ 1928. 3.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8)
관련 사건
- · 양성면
- · 원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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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8)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수반면(水飯面) 김량장리(金養場里, 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출신이다. 1920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41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지문리(芝文里)에 거주하였으며, 직업은 농업이었다. 염수연(廉守然)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2일 간에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陽城面)·원곡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일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을 때,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각 마을 주민들은 1919년 3월 28일부터 매일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4월 1일에 처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밤 8시경 칠곡리(七谷里)·외가천리·내가천리(內加川里) 등 원곡면내 각 마을 주민 약 1,000명은 원곡면사무소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집에서 가져온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양성면 동항리(東恒里)에 위치한 경찰관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여 밤 9시 50분경 도착하였다. 이때 마을에 있다가 원성삼(元聖三)·안문보(安文甫)의 권유로 양성경찰주재소에서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당시 양성경찰관주재소에는 양성면민 수백 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가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려는 차에 원곡면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이에 밤 10시경 2,000명 이상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양성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러 유리창·벽·기물 등을 부수고 주재소 사무실, 순사 기숙사 건물과 각종 문서 등을 불태웠다. 그리고 다른 시위대와 함께 양성우편소로 몰려가 재차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일부 시위대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하기도 하였는데, 그때도 이들과 함께 하며 동참하였다. 다음 날 4월 2일 새벽 4시경 시위대와 함께 다시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갔는데, 그 중 일부는 숙직실에 불을 지르고 서류와 물품을 전부 불태웠다. 그러자 안성경찰서는 경찰들을 급파하여 원곡면과 양성면 주민 수백 명을 만세시위 연루자로 체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죄·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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