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운
延成運1859. 8. 13 ~ 1919. 3.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안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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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59년 8월 13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안주면(安州面) 건인리(建仁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異名)으로 한자만 다른 연성운(延聖云)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천도교를 믿었고, 61세가 되던 1919년 3월 일어난 평남 안주군 안주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3월 3일 일어난 안주군 만세운동은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시위였다. 천도교 안주 교구장으로 있던 김안실(金安實)은 그 해 2월말 천도교 본부로부터 전해진 독립선언서를 확인하고, 천도교회 간부였던 김광호(金光浩)·김춘택(金春澤) 등과 상의하면서 안주지역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평양으로 차신정(車信正)을 보내 만세운동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3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어 안주군 내 곳곳에 있는 천도교 전교실(傳敎室)에 사람을 보내어 천도교도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러던 중 기독교계가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먼저 일으켰다. 안주 동예배당(東禮拜堂) 목사인 김찬성(金燦星)을 필두로 10여 명의 청년 대표가 중심이 되어, 3월 1일 안주면 서문(西門) 밖에서 기독교인 200여 명과 함께 장날을 맞아 나온 군중 수 천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안주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자 10여 명을 붙잡았고, 이에 다음날 3월 2일 군중들이 헌병대를 감싸고 석방을 요구하는 등 만세시위 열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이어 3월 3일 오전 11시, 안주면 율산공원(栗山公園)에 천도교도를 비롯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인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독립선언식이 진행되었고, 이후 대형 태극기와 북치는 악대(樂隊)를 앞세워 안주 각지를 행진하였다. 이때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서문 근처 연당(蓮塘)을 시작으로, 안주 공립보통학교(安州公立普通學校)를 지나 서강(西岡) 방면 공립농업학교(公立農業學校)를 지나갔다. 일제 통치기관인 안주군청과 평양지방법원 안주지청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3월 1일 만세시위 주도자들이 갇혀 있는 헌병대 앞에 도착하였다. 이후 대열의 선두에서 군중과 함께 헌병대를 포위하고 붙잡혀 있던 김찬성, 김화식(金化湜)·박의송(朴義松) 등을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자 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제 헌병들이 갑작스럽게 총을 쏘며 모여 있는 군중들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때 대열의 선두에 서 있다가 일제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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