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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도

延成道

186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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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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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안주(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안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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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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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안주면(安州面) 율산리(栗山里)에서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58세로 186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연성도(延聖道),연성수(延聖燾)를 썼다. 고향에서 농업(農業)에 종사하다가 1919년 3월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安州面) 일대에서 천도교도가 중심이 되어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주군 일대 만세운동은 3월 1일 기독교계 운동과 3월 3일 천도교계 운동이 서로 연관되면서 진행되었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자 사전에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기독교계와 천도교계는 안주군에서도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일, 먼저 안주 동예배당(東禮拜堂)의 김찬성(金燦星) 목사를 비롯한 청년 신도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안주면 장날을 맞아 안주면 서문(西門) 밖에 모여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이것이 독립만세운동임을 깨달은 일제 헌병이 주도자 10여 명을 붙잡자 군중들은 다음 날인 3월 2일부터 헌병대 앞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천도교계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주목하며 계획되었던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3월 3일 11시경, 율산공원(栗山公園)에는 천도교도를 비롯하여 5,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희망하고 있음을 표출하였다. 이후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북을 치는 일행들 사이에서 서문 연당(蓮塘)을 지나, 안주공립보통학교(安州公立普通學校)·서강공립농업학교(西岡公立農業學校)·안주군청·평양지방법원·안주지청 등을 거치며 만세를 불렀다. 마침내 헌병대 앞에 도착한 후에는 3월 1일 체포되어 심문을 받던 기독교 인사들을 석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일제 헌병은 이를 거부하고 총을 발포하면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거 붙잡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발포로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5명이 부상 당하였으며, 20여 명이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이들과 함께 붙잡혀 헌병대에서 모진 심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한국인이 한국 독립을 희망하여 만세를 부른 것은 정의와 인도에 합당한 것이므로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1919년 7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도 징역 2년을 받았으며, 이에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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