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춘일
嚴春日187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강원 영월
- · 충북 영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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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남면(南面) 장전평리(長田坪里, 현 남면 창원리 진밭들마을)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36세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두 개였는데 농업에 종사하면서 술 판매하는 주상(酒商)도 겸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출생월일과 성장 과정, 집안 내력 등은 확인할 수 없다. 1904년 일제는 본격적으로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전쟁을 전개하면서 강제적으로 한국과 한일의정서, 그리고 한일외국인고문용빙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군사·외교·재정권 등 일련의 국권을 빼앗았다. 이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로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1907년에 이르러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더불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여 대한제국 군대해산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 침탈 행위에 분노하는 애국 지사들은 잃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섰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8년 2월부터 강원 영월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11월에 다른 의병 3명과 함께 총을 휴대하여 충청북도 영춘군(永春郡) 차의곡면(車衣谷面) 장발리(長發里, 현 단양군 영춘면 장발리)에서 현금 4원, 마포 1필 등의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였고, 동군 같은면 사지원리(斜只院里, 현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에서 현금 5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12월에 강원도 영월군 남면 룡주원리(龍珠院里, 현 영월군 한반도면 쌍룡리 용정원마을)에서 현금 2원 등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충청북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에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10년 6월 10일에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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