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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敬贊

敬贊

1902 ~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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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敬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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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간도참변(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1921년 당시 20세이므로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중국 만주 옌지현(延吉縣)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일제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우고, ‘출병(出兵)’ 구실을 만들기 위해 중국 마적(馬賊)을 사주하여 같은 해 10월 2일 훈춘현(琿春縣)의 일본 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게 하였다. 이 훈춘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10월 12일 대규모 병력을 간도로 출병시켰다. 일본군은 출병 초기 항일운동 근거지를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을 진행하다가 10월 20일을 기하여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독립군이 일본군이 공격해 오기 힘든 산 속 또는 중·소 국경지대로 미리 이동해 버림으로써 일본군의 작전은 차질은 빚게 되었다. 그러던 중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일어났던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한인사회·항일단체·학교·교회 등을 초토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일본군은 1921년 4월까지 수많은 한인 마을을 대상으로 방화·약탈을 일삼고 한인들을 보는 대로 학살하였다. 이 무렵 옌지현(延吉縣) 랴오투(老頭溝) 의봉촌(儀鳳村)에서 일본군에 붙잡혔다. 붙잡힌 상태에서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일본군의 자백 요구에 끝까지 버티며 협조하지 않았다. 일본군에 의해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으며, 총격을 입을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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