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환
吳成煥1895. 8. 26 ~ 1964. 7.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고려혁명당
- · 정의부
- · 형평사혁신동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5년 8월 26일 충청남도 대전(大田)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평택(平澤)이다. 이명으로 오성완(吳成完)을 사용하였다. 1923년 형평사(衡平社)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4월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운동(衡平運動)은 급속히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각지에 지사(支社)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때 형평사 충남지사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전조선형평대표자대회에서 본사를 대전으로 이전하기로 결의한 것이 번복되면서, 본사의 위치를 두고 형평사 조직 간 내분이 일었다. 장지필(張志弼)과 함께 본사의 서울 이전을 주장하며 형평사와 별도로 형평사혁신동맹(衡平社革新同盟)을 결성하였으며, 총본부 간부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1924년 4월 형평사 창립 1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회원 200여 명과 방청객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형평사혁신동맹대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대전에서는 진주 형평사본부의 주최 하에 전국형평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서울과 진주 형평사 단체의 이러한 대립은 형평운동의 추진방법에 대한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형평사혁신동맹은 경기·강원·전라 출신의 무산 백정들이 주류였으며, 같은 계급의식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형평운동을 진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진주 형평사의 경우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비백정 일반인 혹은 부유한 백정들을 주류로 하여 개량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형평사혁신동맹과 진주 형평사 본사는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4년 7월 27일 형평사혁신동맹 간부인 장지필·조귀용(趙貴用) 등과 함께 대전에서 진주 형평본사 간부 강상호(姜相鎬)·이학찬(李學贊)·하석금(河石金) 등을 만나 형평경진양사위원간담회(衡平京晉兩社委員懇談會)를 열고 통합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1924년 8월에 전조선형평사대회(全朝鮮衡平社員大會)를 개최하고, 통합단체의 명칭은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 하며 본부는 경성에 두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조사부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1925년 4월 서울 시천교당(侍天敎堂)에서 열린 전조선형평대회에서는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어 충남 강경 지방을 담당하게 되었다. 1926년에는 만주로 이동하여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 조직에 참여하였다. 고려혁명당은 정의부(正義府)와 천도교 계열 인사들, 그리고 장지필·조귀용 등을 비롯한 형평사 간부들이 함께 조직한 단체였다. 이들은 같은 해 3월 29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싱징현(興京縣)에 모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만주의 동포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26년 12월 만주 창춘(長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경찰서로 끌려왔다. 1928년 4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0년 4월 6일에 풀려난 뒤에도 형평사 임원으로 활동을 지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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