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완
吳碩完1894. 3. 14 ~ 1933. 5.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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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3월 14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삼서면(森西面) 수양리(首陽里)에서 태어났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부원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통의부는 만주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였다.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간도에서는 일본군들에 의해 한국인들이 무자비하게 학살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간도참변(間島慘變)’ 또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 부른다. 1920년 8월 일본은 만주에 있던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출병할 구실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 결과 1920년 10월 중국 마적(馬賊)과 내통하여 훈춘현(琿春縣)에 있던 일본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고 불태우게 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것을 ‘훈춘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구실로 일본은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로 출병시켰으며, 10월 20일부터 대대적인 독립군 ‘소탕’ 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여러 독립군 단체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22년 8월 23일 대한광복군영(大韓光復軍營)·대한정의군영(大韓正義軍營)·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등 8단(團)9회(會)라고 불리는 17개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은 중국 펑톈성(奉天省)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통의부를 결성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통의부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1923년 8월 30일 남만한족통일회장(南滿韓族統一會長) 김승만(金承萬)의 명의로 발표되었다. 통의부에서는 일제 기관을 폭파하고,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부원들을 국내로 잠입시켰다. 1925년 통의부 부원이었던 조인현(趙仁賢)이 군자금 모집을 위임한다는 격문과 영수증 등을 가지고 전라도로 파견되었다. 1927년 (음)2월경 전남 목포부(木浦府) 대정정(大正町)에 있는 신흥(新興)여관에서 조인현을 만났다. 이때 조인현으로부터 통의부에 가담할 것을 권유 받았으며, 그 결과 통의부에 참여하였다. 1927년 (음)5월 22일에는 전남 장성군 장성면(長城面) 월평리(月坪里) 철로 부근에서 조인현에게서 권총 1자루와 실탄 28발을 보관 해줄 것을 부탁받고, 1927년 5월 28일경까지 숨겨 놓았다. 이후 군자금 모금을 계획하는데 앞장섰다. 1928년 6월 15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군자금 모금을 위한 통의부원들 중에 가장 학식과 예의범절이 뛰어났으며, 계획을 세우는 데 총참모 역할을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통의부원을 주도하여 지폐를 제조하고 폭탄을 제조하여 군자금 모금하고 관공서, 은행, 일제 착취 기관 등을 습격하려고 하였다. 1927년 전남에 사는 부호였던 강모(姜某)에게 지폐를 위조하기 위한 비용 1,000원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30년 3월 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총포화약류취체령과 동령시행규칙위반, 공갈 등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으나, 1933년 5월 16일 오전 2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출옥 이후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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