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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영

吳錫永

187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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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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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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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평안북도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5년 당시 47세인 것으로 보아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오석영(吳錫泳)을 사용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야단(野團)에 가담하였다. 야단은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동학의 한 교파였던 청림교(靑林敎) 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독립운동 단체였다. 옌지현(延吉縣) 동불사(銅佛寺)에 본부가 위치해 있었으며, 소속 단원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등 항일 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청림교 교도였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야단의 주축 인물로 활동하였다. 1921년 6월 28일 사할린 의용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한국독립군이 희생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혹은 ‘흑하사변(黑河事變)’이라고 한다. 1921년 9월 자유시 인근에 있는 독립운동단체들은 러시아 적군 및 이들과 협력한 이르쿠츠쿠파 고려공산당의 주요 인사들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때 윤좌형(尹佐衡)과 함께 야단의 대표가 되었으며, 국민회(國民會)·군비단(軍備團)·광복단(光復團)·신민단(新民團)·노농회(勞農會)·공의단(公義團)·태극단(太極團)·농무회(農務會)·의민단(義民團)·청년독립단(靑年獨立團)과 함께 야단 대표로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1922년 항일독립군 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간도참변(間島慘變)’과 ‘자유시참변’을 겪으면서 한국 독립군의 활동은 위축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단체들을 연합하여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922년 8월 23일 대한광복군영(大韓光復軍營)·대한정의군영(大韓正義軍營)·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등 8단(團)9회(會)라고 불리는 17개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은 중국 펑톈성(奉天省)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통의부를 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통의부가 결성되었다는 것은 1922년 8월 30일 남만한족통일회장(南滿韓族統一會長) 김승만(金承萬) 명의로 발표되었다. 중앙부는 콴뎬현(寬甸縣)에 있었으며, 싱징(興京)·환런·지안(集安) 등 총 12개 지역에 총영(總營)이 배치되었다. 이때 참모부의 참모(參謀)로 임명되었으며, 참모부방 이천민(李天民), 부감 전덕원(全德元), 참모 윤세용(尹世溶), 손병헌(孫炳憲), 이장녕(李章寧), 독고욱(獨孤旭)과 함께 통의부 참모부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 되었다. 1923년 통의부를 탈퇴하였고,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의군부)가 설립되는 데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의군부는 통의부 내에서 복벽주의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통의부를 탈퇴한 후 만든 항일독립운동 단체였다. 통의부 내에는 크게 공화주의 성향을 가진 인사들과 복벽주의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있었고, 1922년 10월 이후 갈등이 증폭된 결과 의군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1923년 2월 환련현 대황구(大荒溝)에서 의군부가 결성되자, 사령장(司令長)직을 담당하게 되어 총장 채상덕(蔡相悳), 군무부장 전덕원, 정무부장 김유성(金有聲),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부관 강규묵(康奎黙), 참모장 박대호(朴大浩), 대대장 박일초(朴日楚)와 함께 의군단을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었다. 일제는 중국 콴뎬 지방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인물로써 오석영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1925년 1월 12일 하얼빈총영사가 일본 외무대신 시데하라 기주로(弊原喜重郞)가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의군단 소속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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