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록
吳鳳祿1903. 2. 6 ~ 1981. 7.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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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3년 2월 6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마선리(馬船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세창(世昌)이다. 보성학당(普成學堂)을 졸업한 뒤 초산군(楚山郡) 명신학교(明新學校) 교사로 재직하였다. 1907년 국채보상의무금으로 박문욱(朴文旭)·최지만(崔致萬) 등과 함께 각각 20전을 기부하였다. 명신학교에 재직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을 외치는 함성에 응하여 독립운동의 행렬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후 천마산대(天馬山隊) 제3중대에 입대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군수용품의 구입을 위해 단원 이창진(李昌珍) 등과 같이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천마산대는 만세운동 이후 평북 의주군(義州郡) 천마산 일대에서 최시흥(崔時興)·심용준(沈龍俊)·김세진(金世鎭) 등 40명의 청년들이 구식 화총 23자루를 가지고 조직한 무장단체이다. 천마산대는 주재소, 경찰서,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는 등 유격전을 벌였다. 일명 천마대(天摩隊)라고도 불렀던 천마산대는 의주 고령삭면의 천마산을 기지로 삼고 국내의 일제 기관을 습격하는 한편 친일 밀정을 처단하는 활동도 하였다. 1921년에는 김창오와 함께 초산군 도원면(桃源面)에서 밀정 임모(林某)를 생포하였고, 1922년 9월에는 단원들과 같이 희천군의 명문창주재소를 습격하여 장총 15정, 군도 17개, 탄환 1,000여 발을 획득하였다. 나날이 증가하는 대원수와 일제 경찰의 압박으로 인해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점차 힘들어지자, 1922년 단장 최시흥은 대부분 병력을 만주지역으로 옮기고 본근거지에는 약 30명의 대원만 남아 있도록 하였다. 만주지역으로 병력을 이동한 이듬해인 1923년 환런현(桓仁縣) 쌍류하(雙流河) 에서 중국 군인들과 교전을 하고 탈출하면서 일본인 미야자키(宮岐)를 생포하였다. 1924년 3월 천마산대가 해산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편입되면서, 다시 교사로 돌아가 교육활동에 전념하였다. 옌지현(延吉縣)에서 영미국민학교(永美國民學校) 교사로 한인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한편, 한의사로서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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