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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동

嚴柱東

1897. 5. 23 ~ 197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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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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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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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조선식산장려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7년 5월 23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장기면(長岐面) 임중리(林中里, 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에서 아버지 엄재영(嚴在永)과 어머니 김숙정(金淑正) 사이에서 2남 8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호는 보본(普本)이다. 이명으로 엄주천(嚴柱天)을 사용하였다. 191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여 서울 청진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1912년 나철(羅喆)을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이 때 나철이 이름을 엄주천으로 개명해 주었고 호를 보본(普本)으로 지어주었다. 한자 ‘(普本)’을 풀어쓰면 ‘(並日本)’이 되며 “일본을 병합하라”는 의미가 담겼다. 1915년 3월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원양성소 내 비밀결사인 조선식산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가 조직되자 보성중학 동창인 이진석과 함께 서기를 맡았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조선혼을 고취시키고 일본인에게 빼앗기고 있는 각종 사업을 한국인 스스로 일으키고 민족부흥에 나아가기 위한 행동을 교사들과 함께 전개하였다. 1916년 (음)8월 4일부터 8월 15일까지 나철이 조천(朝天)하기 위해 황해도 구월산으로 봉심(奉審)에 나섰을 때 김두봉·나주영 등 6명의 시봉자 중 최연소자로서 수행하였고, 나철의 유품 일체를 유언으로 받았다. 유서를 신규식(申奎植)에게 전달하라는 유언에 따라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신규식에게 전달하고 그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6년 1월 푸쑹현(撫松縣) 동강순경분국에서 대종교 종립학교인 백산학교 교장을 비롯하여 교직원과 의병 27명이 1915년 3월과 9월에 서대령(西大嶺) 지역 밀정 여러 명을 처단한 이유로 붙잡혀 투옥되어 조사를 당했으며, 주도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에 1916년 가을 신규식이 중국 정부 측 장쭤린(張作霖)과 외교 교섭차 방문할 때 수행원으로 동행하였고, 이로써 18개월간 구금되었던 13인의 동지들은 외교 교섭과 교포 700명의 연서를 통해 석방될 수 있었다. 1917년 3월 5일 일제가 조선식산장려계 임원과 계원들을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사법 조치하였으나, 중국으로 망명하여 붙잡히지 않았다. 이후 대종교 서도본사 신규식, 총본사 김교헌(金敎獻), 동도본사 서일(徐一) 사이의 핵심 연락책으로서 활약하였고, 1921년 8월 28일 서일이 사망하자 유서를 2세 교주 김교헌에게 전달하였다. 1922년 3월 15일부터 1923년 2월 28일까지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형(延吉縣) 용정촌(龍井村)에 설치된 대종교 동일도본사 선리부령(宣理部領)에 임명되어 관할 시교당(연길·화룡·왕청·훈춘)을 관리하는 행정 책임을 맡았고, 시내에서 군자금 조달 목적의 미곡상을 위장·운영하였다. 1926년 11월 독립군 연락거점이라는 밀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문당한 끝에 사경에 이르자 풀려나 귀향하였다. 1946년 (음)2월 28일 대종교총본사가 서울로 돌아오자, 1946년부터 1949년 사이에 교무행정의 요직인 전리와 전범에 임명되었고, 1962년에 교무부장과 재단 이사를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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