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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昌乙

昌乙

1900 ~ 19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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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昌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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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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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관대리(館垈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3년 사망 당시 24세인 것으로 보아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천마산대(天摩山隊)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는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 천마산에 근거지를 두고 조직된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豐)·박응백(朴應伯) 등 대한제국 군인 출신들을 주축으로 하였으며, 총 인원은 500여 명에 이르렀다. 천마산대는 군자금 모금,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일본군과 친일파 처단 등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대원들은 주로 화승총이나 칼과 같은 재래식 무기로 무장하였으며, 그 외에 중국군으로부터 구입하거나 일제 군경으로부터 탈취한 무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정규군을 표방하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통합되어, 광복군 천마별영(天魔別營)으로 개칭하였다. 천마산대 대원으로서 평북 위원(渭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하였으며, 만주로 이동하여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던 중, 1923년 2월 11일 평북 희천군 북면 삼대참(三垈站)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같은 해 7월 21일 만주 환런현(桓仁縣)에서 통의부(統義府) 임원들과 여러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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