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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仁黙

仁黙

1877. 6. 19 ~ 196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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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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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산(光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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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7년 6월 19일 전라남도 광산군(光山郡) 임곡면(林谷面) 신룡리(新龍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양원경(梁元卿)이다. 1906년 광주(光州)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태원(金泰元) 의병장의 휘하에서 활동하였으며, 1906~1908년 무등산전투(無登山戰鬪)에 참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고향인 광산군 임곡면(林谷面)에서 군중들을 주도하며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후 계속적인 항일운동을 모색하던 중 1920년 10월 신덕영(申德永)의 권유로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월 말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 조선 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전국 각처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또 이들은 당시 사회 각층을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儒林)·종교(宗敎)·교육(敎育)·상공(商工)·노동(勞動)·청년(靑年)·군인(軍人)·부인(婦人)·지역구역(地域區域) 등 11개 단(團)으로 분류하고, 이와 같은 사회 각층의 인사들을 통일·종합함으로써 범국민적 조직을 구상하였다. 조선민족대동단 가입 당시 본부 조직은 의친왕 망명사건으로 대부분 체포되어 와해되었지만, 지방에서는 여전히 각 지단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1920년부터 광주(光州)·곡성(谷城)·화순(和順) 등지에서 대동단을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지역 부호들에게 모금 취지를 알리고, 이에 불응하는 이들에게는 경고문을 발송하는 등의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즉시 항소하여 그 해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이미 1년 가까이 옥고를 겪은 뒤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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