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탁
安禧鐸1912. 4. 6 ~ 1935. 3.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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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912년 4월 6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운봉면(雲峰面) 동천리(東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안병모(安丙模)이다. 1930년경 전북 남원 운봉면의 청소년을 모아 무료로 이발을 해주는 운봉단발계(雲峰斷髮契)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이발 사업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동시에 청소년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운봉단발계의 노력과 배경에 힘입어 1931년 1월 임철호(林喆鎬)·박종암(朴鍾岩) 등과 남원청년동맹(南原靑年同盟) 운봉지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매월 15일에 정기총회를 열어 일제의 토지수탈에 대항할 계책을 마련하였다. 그에 따라 불경작동맹(不耕作同盟)과 소작료불납동맹(小作料不納同盟)을 결성하여 농민의 단결을 도모하고 지주에게 대항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제의 탄압이 가해오자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의 활동이 부진하게 되었다. 이후 박종암·임철호 등과 함께 운봉지부의 활동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조직을 개편하였다. 이때 박종래(朴宗來)와 함께 서무부·재무부의 일을 맡게 되었다. 이후 운봉면 일대에서 수십 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야학을 개설하여 한글을 가르치고, 사회 개혁을 위한 사상을 교육시켰다. 한국의 농촌이 피폐해진 이유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제를 몰아내고 친일 지주와 자본가를 배척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야학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항일운동을 해 나가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33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35년 3월 30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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