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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상

元利尙

186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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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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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구성(龜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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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구성군 신시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사기면(沙器面) 석현동(石峴洞)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8세로 1862년생으로 추정된다. 한자를 읽는 법에 따라 한글로는 이름이 원이상으로 표기되어 있는 기록도 있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구성군 사기면 신시(新市)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구성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7일 최예락(崔禮洛)을 비롯하여 최성진(崔成珍)·양인항(梁仁恒) 등은 독립선언서와 주의서를 각각 500장씩 확보하여, 구성군 남시(南市) 시장에서 군중에 배포하고 태극기와 독립기를 나누어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3월 11일에 구성군 남시에서 4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는데, 일제 헌병들이 총을 쏘면서 시위대를 막아섰고 15명이 붙잡혔다. 같은 달 30일에는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하여 300여 명이 시위를 벌여 읍내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이를 막기 위하여 헌병 경찰이 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사상자가 여러 명 발생하였다. 다음날인 3월 31일은 남시 장날이었는데, 이 날 5,000명이 넘는 군중이 남시 시장에 모여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으며 헌병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5명이 붙잡히는 결과를 낳았다. 구성군 사기면 신시에서는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에 걸쳐 대규모로 시위가 일어났는데 시위대의 앞에 서서 만세를 불렀다. 신시에서는 3일 31일 정오를 기하여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로 행진했는데, 헌병이 이를 막고자 총을 쏘아 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튿날인 4월 1일에는 구성군 내에서는 읍내와 남시, 신시 3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는데, 신시에서는 오전 10시가 되자 1,500명 이상의 대규모 군중이 모여 전날에 이어서 시위를 재개했다. 헌병 경찰은 시위대에 맞서 이 날 또한 총을 쏘아 시위군중 중에서 부상자 5명, 일제 경찰 측에 부상자 4명이 발생했으며, 30명이 붙잡혔다. 이 날 만세시위에서 시위대 앞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재판 과정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열린 만국강화에서 민족자결문제가 제출된 것이 명백하고, 세계 상의 약한 민족이 일어나 독립을 부르는 것을 하늘이 준 큰 기회로 생각하고 만세 단체에 참가하여 만세를 환호하였는데 이것을 보안법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초심 및 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은 것은 사실과 다른 판결”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등법원에 “일본은 동양의 맹주인데 4000여 년 역사에 빛나는 조선 민족을 미개한 토착민으로 대접한 것은 일본이 문명국으로 큰 수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이 점이 억울하다”고 하며 상고하였다. 그러나 1919년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는 상고를 기각하여,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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