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우희원

禹熙元

1901. 2. 5 ~ 1978. 1. 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우희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의성군 비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901년 2월 5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계면(安溪面) 교촌리(校村里)에서 태어났다. 비안면에 있는 비안공립보통학교(比安公立普通學校) 학생 신분으로 급장(級長)이던 박만녕(朴萬寧)을 비롯하여 박기근(朴基根, 혹은 朴望牙)·정인성(鄭寅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3월 초순 연쇄적으로 발발한 서울과 평양의 선구적인 만세시위의 소식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각 지방사회는 곧 이에 호응하여 자체적인 만세운동을 기획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9일 급장이던 박만녕의 권유를 받고 박기근·정인성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3월 11일 비안 장날을 기하여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오전 11시 교정 아카시아나무 아래로 전교생을 모은 후 방과 후 비안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것이니 반드시 모이라고 당부하였다. 그날 오후 일부 학생들이 장터에 모였으나, 첩보를 미리 입수한 일제 군경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자 부득이하게 거사일을 다음날인 12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학생 지도부와 함께 오전 9시 30분 교정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회합을 갖고, 이날 오전 11시 학교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전교생에게 이와 같은 거사 계획을 은밀히 전파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비안공립보통학교 전교생 150명은 사전 계획대로 학교 뒷산에 올라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였고, 만세연호를 신호로 교장실에서 전날의 독립운동 준비로 강압적인 설교를 듣고 있던 주도 학생인 급장 4명 또한 교장실에서 뛰쳐나와 이에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자 교사들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제 군경들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박기근·정인성 등의 주도 학생들을 붙잡았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박기근·정인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