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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선

禹泰先

1889. 11. 16 ~ 193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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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우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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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고성군 구만면
  • · 회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89년 11월 16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개천면(介川面) 북평리(北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구만면(九萬面)과 회화면(會華面)을 중심으로 거행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독립선언과 만세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운동은 3월 17일 배만두(裵萬斗)·이상은(李相銀)·김상욱(金相煜) 등을 중심으로 한 고성읍내 만세운동 계획을 시작으로 고성군 내에서도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구만면의 최낙종(崔洛鍾)은 서울에 가서 고종의 장례 행렬을 마중하려던 차에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귀향하였는데, 마찬가지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있던 최정원(崔正元)·허재기(許在基)·최정주(崔正周) 등 구만면의 청년들과 뜻을 같이하여 고성에서 만세운동을 궐기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3월 20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한 다음, 주변 12개 동리에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오후 1시의 나팔소리를 시작으로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받은 구만면 주민들은 국천(菊川) 모래사장에 집결하였는데, 이때 함께 대열에 참가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 낭독과 공약 3장 제창과 동시에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마을을 행진하였고, 회화면 배둔리(背屯里)의 시장으로 나아갔다. 일제 경찰과 헌병은 행렬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장터에 이르러 8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된 만세 행렬은 계속해서 시위를 전개하였고, 오후 내내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친 후 자발적으로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는 만세운동에 참가한 구만면 주민들을 색출하여 연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참가자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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