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식
吳壽軾1858. 2. 7 ~ 1938. 3.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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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58년 2월 7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실촌면(實村面, 현 광주시 곤지암읍) 이선리(二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고향에 거주하며 이선리에서 구장(區長)을 맡고 있었다. 1919년 각지에서 발생한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실촌면에서도 시위운동을 전개하고자 결심하였다. 이후 1919년 4월 6일을 거사일로 잡고 마을 주민들에게 오후 4시까지 만선리(晩仙里)로 집합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지시하였다. 4월 6일 오전 7시경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이선리 주민들 50여 명을 이끌고 만선리로 시위행진을 하였다. 만선리에 도착하고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실촌면 내 다른 주민들도 합류하여 시위 군중의 숫자는 2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후 200여 명이 넘는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가 있는 오향리(五香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오후 5시경 4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을 이끌고 오향리에 있는 실촌면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해 나갔다. 이 때 면사무소에 있던 실촌면 면장 구연복(具然福)에게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시위대를 이끌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곤지암을 향해 행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미리 소식을 들은 일본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진압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오흥운(吳興雲)·오세인(吳世仁)·동치익(董致益)·오수억(吳壽億)·김익수(金益洙)·오세영(吳世永)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3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후 서대문감옥에서 투옥되었는데, 8개월 후인 1920년 4월 28일 감형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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