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문
吳聖文1887. 7. 26 ~ 1942. 6.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진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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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87년 7월 26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백곡면(栢谷面) 갈월리(葛月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진천군 백곡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진천군 백곡면의 만세운동은 대문리 주민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4월 1일 최태성(崔泰成)·서정직(徐廷直)·장진호(張晋鎬) 등 대문리 주민들로부터 만세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라는 통지를 받고, 즉시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갈월리의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4월 2일 갈월리의 주민들에게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갈월리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최태성·서정직·장진호 등이 주도하는 대문리의 만세시위대와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양백리(兩白里)·성대리(城大里)·용덕리(龍德里) 등 백곡면의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최태성·서정직·장진호·신영희(申英熙)·공명삼(孔明三)·이종하(李鐘夏) 등과 함께 1천여 명으로 확대된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여 석현리(石峴里)의 장터로 행진하였다. 석현리 장터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헌병주재소 앞으로 가서 밤새도록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3일에도 만세시위를 지속하여 석현리의 이장이 준비한 아침을 먹은 후, 최태성·서정직·장진호·공명삼·이종하 등과 함께 진천 읍내로 행진하여 만세시위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신영희는 도망치는 백곡면장 남기석(南基錫)을 붙잡아 태극기를 들려 만세시위대의 선두에 세웠다. 만세시위의 양상이 과격해지고 범위가 확대되어 가자, 백곡면 주재 헌병 분견소장은 소수의 병력으로 만세시위를 제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세시위대의 진천으로의 행진을 중단하고 해산할 것을 간곡히 애원하였다. 그러나 이를 뿌리치고 최태성 등과 함께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진천 읍내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만세시위대가 진천 읍내로 이동 중이라는 급보를 받고, 진천 주둔의 일제 헌병대가 출동하였다. 이들은 사송리(沙松里)의 모퉁이에 저지선을 치고 만세시위대의 행진을 가로 막았다. 이에 저항하여 신영희 등이 일제 헌병대와 격투를 벌이면서 만세 행진을 계속하려 했으나, 일제 헌병대는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대를 강제 해산 시켰다. 이 과정에서 헌병대에 붙잡혀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8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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