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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오

吳鳳梧

1873. 1. 6 ~ 195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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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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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원(平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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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1월 6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석암면(石岩面) 반송리(盤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도교 교인으로 주류와 면(麵)류를 판매하는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평원군 석암시장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평원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6일에 순안면(順安面)을 시작으로 3월말까지 이어졌다. 평원군은 대한제국 말기에 순안·숙천(肅川)·영유(永柔)의 3개 지역을 합하여 하나의 군이 되었다. 이러한 지역적인 특색으로 군내에 향교도 3개 지역에 있었고 각각 신식 학교도 있었으며 만세운동도 3개의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평원군의 시위는 3월 6일 순안면에서 시작되었다. 500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경찰서로 행진했고 일제 경찰은 17명을 검거하였다. 그러나 시위가 잦아들지 않자 일제 경찰은 평양에 병력을 요청하여 장교와 보병 등 10명의 병력이 증원되었다. 순안면에서 시작된 시위는 다음 날인 7일 영유읍에서 군수 박상준(朴相駿)의 적극적 만류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대신 영유읍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어파(漁波) 역전촌(驛前村)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같은 날인 3월 7일 석암시장(石岩市場)과 공평면(公平面) 신화리(新和里)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6일 순안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3월 7일 석암면 석암시장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군중 200~300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선두에서 시위를 지휘하다가 이발업자 주성민(朱聖敏), 소간물 상인이었던 홍성모(洪聖模), 미곡상 최인수(崔仁洙)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일제 재판정에서 “일본의 강제 병합 이후 조선이 독립하기를 항상 원하고 있었다”고 진술하며, “천운이 순환하여 역행하지 않고 다행히 건국 4252년(서기 1919년) 독립에 이르렀으니, 조선인이라면 누구든지 어디에서든지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고 말하고, “조선 민족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은 무슨 죄에 해당하는 것이냐?”고 자신의 무죄를 당당하게 주장하였다. 제1심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2심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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