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呂圭炳

圭炳

1879. 2. 19 ~ 1935. 8. 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呂圭炳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영동(永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학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79년 2월 19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학산면(鶴山面) 지내리(池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6일 영동군 학산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와 학산주재소 습격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영동군 학산면에서는 3월 하순부터 4월까지 일제의 관공서를 무력으로 습격하는 격렬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학산면의 격렬한 만세운동의 배경은 일제의 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노동력 수탈 때문이다. 일제의 뽕나무 묘목 강제 배부와 함께 험준한 산악 지대인 영동과 전북 무주(茂朱) 사이의 도로 공사에 대한 노동력 강제 동원이 주민들의 일상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였다. 1919년 4월 16일 지내리의 김승림(金升林)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평소 같은 서당에서 공부하며 국권 상실에 대한 울분을 공유하던 김승림으로부터 만세운동을 일으키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 제안에 즉시 동의하여 만세운동 준비에 나섰다. 영동-무주 간 도로 공사는 강제 노동력 동원으로 불만이 높았기 때문에 주민 동원일인 4월 16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도로 공사에 강제 동원된 주민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6일 오전 만세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영동-무주 간 도로 공사 현장에 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공사에 동원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곧바로 수백 명의 주민들이 동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 대열을 조직하고 선두에서 이들을 지휘하여 직접적으로 노동력 동원을 강제하여 원한이 높았던 학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습격을 주도하였다. 주재소의 기물을 완전히 파괴한 뒤, 시위대를 이끌고 영동-무주 간 도로에 가로수로 심기 위해 일제가 마련해 놓은 뽕나무 밭으로 가서 묘목 수만 그루를 모두 소각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학산면에서 또다시 격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면서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의 중심 인물로 파악되어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