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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九一

九一

1883. 1. 2 ~ 197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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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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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永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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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학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83년 1월 2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학산면(鶴山面) 지내리(池內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규일(圭一)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6일 일어난 학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영동군 학산면에서는 1919년 3월 29일부터 4월까지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일제의 노동력 수탈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이 폭발하여 여러 차례의 만세시위에서 일제의 관공서를 습격하는 격렬한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특히 뽕나무 묘목의 강제 배부와 함께 소백산맥과 금강을 가로질러 험준한 산악지대인 충북 영동과 전라북도 무주(茂朱)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공사에 대한 강제 노동력 수탈은 사망, 부상 등의 위험이 높아 주민들의 분노의 표적이었다. 1919년 3월 29일 학산리(鶴山里) 주민 2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관공서를 공격한 만세시위가 있었다. 다음날인 3월 30일 이웃한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의 이채연(李彩然)·이관연(李觀然)·이헌주(李憲周)가 주도하여 도로공사에 동원된 양산면과 학산면의 주민들과 함께 연합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4월 3일은 양봉식(梁鳳植)·이기영(李機榮)·전재득(全在得) 등을 중심으로 면소재지인 학산면 서산리(鋤山里)의 호미실 장터에서 300여 명의 주민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4월 16일 김승림(金升林)을 중심으로 학산면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같은 서당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평소 국권 상실에 대한 울분을 공유하던 김승림으로부터 만세운동에 대한 제안을 받고 정화중(鄭化中)·박두업(朴斗業)·박원보(朴元甫)와 형제지간인 여규병(呂圭炳)·여구방(呂九芳, 圭滂)·여중선(呂中仙)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들과 여러 차례 구체적인 만세운동 계획을 의논하여 영동-무주 간 도로공사를 위한 노동력 동원에 많은 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그 불만이 높기 때문에 이들에게 만세운동을 호소하여 시위를 일으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거사일은 도로 공사에 노동력을 강제 동원하기로 예정된 4월 16일로 결정하였다. 1919년 4월 16일, 만세세위 주도자들과 함께 영동-무주 간 도로공사 현장에 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공사에 동원된 면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때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여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왔던 학산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면서 다른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주재소의 기물을 완전히 파괴하고, 영동-무주 간 도로에 가로수로 심기 위해 일제가 마련해 놓은 뽕나무 묘목 수만 그루를 모두 소각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지내리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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