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엄대성

嚴大成

1890. 11. 11 ~ 1945. 6. 2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엄대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황해 해주(海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해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추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11월 11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추화면(秋花面) 약현리(藥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 해주군 추화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해주군의 만세시위는 박희도(朴熙道)와의 긴말한 관계 속에서 3월 1일부터 추진되었다. 1919년 2월 20일 박희도와 최성모(崔聖模)는 김명신(金明信)을 해주읍 남본정(南本町)의 예수교회 목사 오현경(吳玄卿)에게 파견하였다. 김명신은 오현경을 만나서 독립선언서 300장과 최성모의 서신을 전달하였다. 오현경은 예배당에서 황학소(黃鶴巢)·임용하(林容夏)·이동혁(李東赫)·최명현(崔明鉉)·김창현(金昌鉉)과 함께 3월 1일 남본정 예배당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무렵 오현경은 남본정 예수교회 예배당에서 고종의 봉도식(奉悼式)을 거행하였다. 봉도식을 마친 후 오현경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예배당에 모인 170~180여 명의 사람들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선창 후 오현경은 예배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었다. 일제 군경은 3월 1일 남본정 예수교회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에 참여한 인사들을 체포하였다. 이어서 3월 8일에는 3월 9일 해주읍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던 최봉직(崔奉稷)·이명수(李明洙)·이인규(李麟珪)·김석만(金錫萬)·최병한(崔丙漢) 등을 체포하였다. 일제 군경의 엄중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해주군에서는 3월 9일 석동면(席洞面) 서원리(書阮里), 3월 10일 서변면(西邊面)에서 계속해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2일, 보통학교에 함께 다니던 서병하(徐丙夏)·이봉소(李鳳韶)·오교근(吳敎僅)·전두남(全斗南) 등과 함께 추화면(秋花面) 약현리(藥峴里) 청단(靑丹)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김택근(金澤根)·김은택(金恩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독려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했다. 6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행진한 후,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은택은 주재소 사무실로 들어가서 천정을 파손시켰다. 일제 군경은 추가 병력을 추화면으로 파견해서 만세시위를 진압하고 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3월 12일 추화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0일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5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만국강화회의에서 타국의 속령인 나라는 독립을 시킨다고 하여서 학생들과 함께 조선독립에 대해서 만세를 불렀다”고 밝히면서 상고하였으나 그해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