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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동

嚴奇東

1903. 8. 11 ~ 193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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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엄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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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화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903년 8월 11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농암리(農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7일 화성면 농암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화성면에서는 면소재지인 산정리(山亭里)에서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박공삼(朴公三)과 조남희(趙南熙)의 주도로 면사무소의 증축 공사 현장을 파괴하는 등 1919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간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화성면 만세시위의 마지막 날인 4월 7일, 농암리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면소재지인 산정리의 맞은 편 북쪽 골짜기에 위치한 농암리 주민들은 산정리의 만세운동에 자극받아 화성면에서 예산군(禮山郡) 방향으로 여러 산을 끼고 연결된 화암리(花岩里)·수정리(水汀里) 등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날 농암리와 화암리·수정리 등의 마을 주민 70여 명과 함께 농암리에 모여 면소재지가 있는 산정리 방향으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산간에 위치한 농암리의 입지 조건 때문인지 이날의 만세시위에 일제 경찰이나 헌병이 바로 출동하지 않아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일제는 헌병대를 동원하여 청양군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물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검거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4월 7일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끌려갔다. 1919년 4월 22일의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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