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化淳
化淳1896. 9. 5 ~ 1933. 2.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외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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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96년 9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남리(城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일어난 전남 무안군 외읍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자, 무안군 외읍면 일대 지역 청년 유지인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는 외읍면 일대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결심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 10여 명을 모았고, 이들은 3월 19일 김순기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다음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맞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정하였다. 이어 태극기를 제작하고, 친일 세력에게 반성할 것을 촉구하며 민중의 궐기를 요망(要望)하는 경고문을 작성하였다. 3월 20일 새벽, 시위 주도자들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경고문을 붙이고, 오전 11시경 외읍면 남산(南山)에서 주도자 10여 명을 포함한 수십 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태극기를 흔들며 시내로 내려왔다. 이때 이미 시내에서 경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시위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함께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를 행진하였다. 오후 2시경 시위대는 500명을 훌쩍 넘었다. 그러자 목포(木浦)에서 일제 경찰 병력이 증파되었고, 무안군수(務安郡守)도 시위를 진압하고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와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다만 시위대의 기세가 등등하였기 때문에 일제 경찰들조차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였으며, 이때 시위대와 함께 계속해서 만세를 외치고, 독립의 정당성을 선전하다가 오후 10시 30분경,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들이 시위 주도자들을 조사하고 체포하는 과정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은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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