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益煥
益煥1897. 7. 6 ~ 1968. 8.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양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7월 6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강현면(降峴面) 장산리(長山里)에서 태어났다. 23세 때인 1919년 4월 5일과 4월 6일 물치시장(沕淄市場)과 양양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양양면 만세운동은 이웃 마을 도천면(道川面) 중도문리(中道門里, 현 속초시(束草市)) 도문동(道門洞)에 사는 이석범(李錫範)이 처음 계획하였다. 이석범은 양양군에서 명망 있던 유학자로, 고종(高宗)의 장례식에 참여하고자 서울로 올라갔을 때 만세운동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는 고향에 돌아와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그 해 4월 4일 저녁, 중도문리에 사는 이종국(李鍾國)의 집에 이국범(李國範)·이능렬(李能烈, 본명 이재훈(李載勳))·김영경(金英經)·박사집(朴士集)·장세환(張世煥) 등이 모여 다음날 물치시장에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곧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받았으며, 물치리·강선리(降仙里)·하복리(下福里)·적은리(積銀里) 등 강현면의 마을 구장들도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적극적으로 주민 동원에 나섰다. 이때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하며 동참을 권유하는 한편, 시위 때 태극기를 만들며 바삐 움직였다. 거사 당일인 4월 5일 아침 일찍에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이웃 마을 물치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는 어느새 강현면 주민과 장꾼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주민들이 모두 모이자 이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오후 10시경 이능렬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나왔다. 쌀가게 앞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으며,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장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군중들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그 날 오후 무렵, 물치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마친 후 시위대를 대포리(大浦里)로 이끌었다. 물치시장에서 만세시위가 한창이던 그때 대포항에서는 도천면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었고, 주도자들은 계획한 대로 대포리에 있는 경찰주재소 앞에서 다시 모이게 되었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경찰주재소 부근을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약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큰 불상사 없이 자진하여 해산하였고, 내일 다시 양양면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이어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일찍, 도시락을 메고 서둘러 양양면으로 향하였다. 도천면·강현면 주민들과 같은 날 만세시위를 펼치고 있던 손양면(巽陽面) 주민들까지 합세하면서 모두 1,300여 명의 군중들이 양양경찰서 앞에 모였다. 전날보다 많은 군중이 모이자 더욱 힘을 얻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충돌 없이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고 모두 귀가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3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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