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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順喜

順喜

1901. 9. 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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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順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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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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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관련 사건

  • · 광주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1901년 9월 9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에서 태어났다. 본적(本籍)은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중흥리(中興里)이다. 1919년 당시 광주면(光州面) 서문통(西門通)에 거주하면서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에 재학하고 있다가 3월 일어난 광주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고초를 겪었다. 광주 지역에서 발생한 만세운동은 수피아여학교 교사(敎師) 박애순(朴愛順)이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박애순은 김철(金鐵)·남궁혁(南宮爀) 등 동지들과 연결하여 만세운동을 조직하는 한편 수피아여학교 생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애순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한국이 독립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이를 들으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할 결심을 굳힌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10일,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진신애(陳信愛)와 학생 박우말례(朴又末禮) 등 20여 명과 함께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에서 열린 작은 장날에 참석하였다. 이때 같은 학교 학우인 박우말례·홍순남(洪順南)·최경애(崔敬愛) 등이 만든 태극기와 박애순을 통해 받은 독립선언서를 품에 숨겨두었다. 이 날 오후 2시 반, 약속했던 거사 시간이 되자 부동교 아래 모인 1,000여 명의 만세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었다. 이어 시위대와 함께 행진을 시작하였다. 장터를 떠나서 서문통(西門通)을 통해 우체국을 지나 구세군지부에 이르기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상황을 파악한 일제 헌병들은 기마 헌병대와 소방대, 퇴역 군인까지 동원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탄압하며 강제 해산을 시도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고, 시위대 100여 명이 일제 헌병에 체포되는 가운데, 이들과 함께 붙잡혀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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