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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斗煥

斗煥

1885. 9. 27 ~ 194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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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斗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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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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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5년 9월 2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일어난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금마면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에서 4월 2일까지 이틀간 전개되었다.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이었던 민영갑(閔泳甲)이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알게된 후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면서 금마면 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주민들에게 연극이 공연되는 4월 1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거사 당일 민영갑 등은 임시 연극공연장에 관객으로 앉아 있다가 아직 연극이 공연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부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이에 20~30여 명의 주민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동참하였으나,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당시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 해산을 목표로 했을 뿐, 시위 주도자와 참여자들을 붙잡지 않았기에 만세시위 참여자들은 다음날 장소를 홍성시장으로 옮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 날인 4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나가 다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날은 홍성 장날이었기 때문에 인근에서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여 더욱 규모 있는 만세시위를 전개할 목적이었다. 이때 시장에서 민영갑·이재만 등이 지휘하는 만세시위를 목격하고는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수백 명으로 확대된 만세시위대에 적극 호응하여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홍성시장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고 전날과 달리 시위 참여자들을 대대적으로 붙잡았다. 이때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어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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