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景學
景學1883. 1. 1 ~ 19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최산흥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최산흥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0) 1883년 1월 1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구암면(龜岩面, 현 구림면) 구암리(龜岩里)에서 태어났다. 의병에 참여하기 이전에는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8년 순창군에서 봉기한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의 부장으로 참여한 최산흥(崔山興)의 휘하에서 활동하였고, 일제의 밀정인 한경서(韓京西)·이용안(李龍安) 등을 처단하는 활동하다가 붙잡혔고 사형을 받고 사망하였다. 1909년 (음)3월 15일 밤 최산흥의 지시로 동료 8명과 함께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문치리(文峙里, 현 구림면) 이장 김순경(金巡敬)으로부터 엽전 10냥을 모집하였다. 이어 다음날인 (음)3월 16일에는 무림면 장암리(長岩里) 이장 오도진(吳道辰)으로부터도 군자금 차출을 요구하여 엽전 10냥을 거두었다. 또한 그 해 (음)3월 26일에는 김형주(金亨注) 등 동료 4명과 함께 총 5정을 휴대하고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八德面) 월곡리(月谷里)에 거주하는 장형숙(張亨叔)으로부터 엽전 80냥을 징집하였다. 같은 해 (음)4월 3일에는 태인군에서 동료 4명과 함께 면명 미상의 장전(長田) 부락에 사는 성명미상자의 집에서 엽전 5냥 및 백목(白木) 1필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이처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편으로는 의병부대의 활동을 밀고하려 했던 친일 밀정을 처단하였다. 1909년 (음)5월 25일 동료 김형주·김응천(金應千) 등과 함께 순창군 팔덕면 태자동(太子洞, 현 광암리 태자마을) 주막 최종길(崔鍾吉) 집에 머물던 중 평소 일본인을 도와 의병을 핍박한 밀정 한경서(韓京西)가 그 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구암면 인근 산림 속으로 연행하여 처단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음)8월 16일 동료 이국찬(李國賛)·조복동(趙卜同)·김태일(金太一) 등과 함께 순창군 인화면(仁化面, 현 인계면) 중산리(中山里)에서 이전부터 의병의 동정을 염탐하여 밀고했던 밀정 이용안(李龍安)을 만나 그를 포박하여 6마정 거리에 있는 솔밭 속으로 끌고 가서 처단하였다. 최산흥 휘하에서 이와 같이 주로 군자금 모집과 일제 밀정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중 1909년 가을부터 일본군의 호남의병대 ‘토벌’을 피해 은신하던 중, 그해 10월 26일 남원경찰서 순사들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10년 1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과 살인·강도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3월 2일 대구공소원 형사부에서 피고의 신문조서, 순창순사주재소 순사가 작성한 검증조서, 김순경·오도진의 각 피해 신고 등 여러 증거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4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형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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