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강주
魚康柱1907. 8. 9 ~ 1943. 5.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본반제동맹 도쿄 성남지구
- · 신내천지구구성대책위원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다마가와(多摩川) 자갈 채취 금지 반대 투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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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907년 8월 9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해면(鎭海面) 경화동(慶和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어광주(魚光柱)·노무라(野村)·다베(田部)를 사용하였다. 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9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현(山口縣) 소재 고죠중학교(鴻城中學校)에 진학하였다. 학교를 중퇴하고 도쿄로 이동하여 노동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32년 1월경 반제국주의민족독립지지동맹(국제반제동맹) 일본지부에 가맹하였다. 이 단체는 “제국주의 반대투쟁을 수행하고, 식민지·반식민지의 완전한 독립과 해방”을 목적으로 한 국제 조직이었다. 일본지부의 경우 구성원의 70~80%가 한인이었다고 한다. 같은 해 10월 도쿄지방위원회 성남지구(城南地區) 책임자 겸 조직부원으로 임명되었다. 정대영(鄭臺榮)과 주원생(朱元生) 등의 회원을 확보해 지역별 반(班)조직을 확립하는 등 조직 확대에 성과를 냈다. 1933년 5월 일제의 탄압으로 가나가와(神奈川)지방 조직이 붕괴되자, 함기철(咸璣徹)과 함께 가나가와 지역에 잠입하여 지방구성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책임자가 되어 조직 재건을 진두지휘하였다. 반제동맹 지부 조직·확대 등 민족운동뿐만 아니라, 동포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에도 헌신하였다. 도쿄일반소비조합(東京一般消費組合)을 결성해 일본 자본 폭리 속에 신음하는 한인들의 생활권 확보와 편익 제공에 노력하였다. 1933년 11월 가나가와현 거주 한인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다마천(多摩川)의 자갈[(砂利)] 채취가 금지되자, 지역 노동조합과 연대해 대중적 청원운동을 전개하고, 시위 활동에 앞장섰다. 같은 달 요코하마시(横浜市) 쓰루미구(鶴見區) 소재 각 마을을 돌며, 직접 입영대상자를 조사한 뒤 이들에게 일제의 대륙 침략 야욕을 비판하고, 전쟁에 참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선전물 5천여 매를 발송하여 반제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일제 경찰은 신혜철(申惠澈)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가던 현장을 급습하였다. 가방에서 ‘불온문서’ 500장과 일본공산당 기관지인 『적기(赤旗)』가 발견되어 1933년 12월 6일 붙잡혔다. 조사 끝에 자갈 채취 금지 반대운동을 사회주의자 가타야마 센(片山潛)의 노동장(勞動葬)과 연계하여, 대규모 시위로 발전시키려던 계획을 포착하였다. 이후 그간의 행적이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1934년 6월 7일과 11월 21일 각각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요코하마형무소(横浜刑務所)에 구금되어 예심을 받았다. 1935년 1월 30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자료의 한계로 보석 사유는 확인할 수 없다. 풀려나자마자 일제 경찰의 특별요시찰인(特別要視察人) 명부에 등재된 사실로 보아, 일제 경찰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생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풀려난 이후 가나가와현에서 생활하다가 1940년 7월 22일 오사카(大阪)로 이주하였다. 1943년 5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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