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상
元道常1848. 1. 1 ~ 1946. 5.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전기의병(호좌의병부대)
- · 후기의병(이강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48년 1월 1일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영춘면(永春面) 보발마을(寶發, 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이다. 이강년은 그를 보산(寶山)이라고 불렀다. 영춘의 유학자이며 재산가였고 배일사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원용갑(元容甲), 원용대(元容大), 원용일(元容一), 원용현(元容賢)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또한 충북의 의병 대장이었던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이세영(李世榮)의 집안과 혼인 관계로 맺어진 긴밀한 사이였다. 전기의병이었던 을미의병 때는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의 제천(堤川) 수성장(守城將)을 맡았다고 한다. 재차 일어난 후기의병 때는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영춘군(永春郡) 총독(總督)으로 활약하였다. 주로 의병대의 병력을 모집하고 군수품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아들들 역시 이강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첫째 원용갑은 중군대장, 둘째 원용대는 선봉장, 셋째 원용일은 서사(書司), 막내 원용현은 재정지원을 수행하였다. 1896년에 유인석 의병부대에서 충주성(忠州城)을 포기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제천으로 들어왔을 때, 제천에 수비진을 구성하는 수성장(守城將)이 되었다. 이시기에 “송(宋)나라 육수부(陸秀夫)가 애산(崖山)바다 배 가운데서 대학을 강론하였다”는 문장을 편지에 적어 보내 유인석을 권면하고 감동을 준 일화가 있다. 또한 영솔장(領率將) 김교헌(金敎憲)이 민영기(閔泳綺)를 함부로 포박하였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참형(斬刑)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타나자, 김교헌은 오직 민영기가 개화당인줄 알고 잡았다고 하면서 옹호하여 그를 용서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화들로 보았을 때 유인석 의병부대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1907년 이강년을 중심으로 의병이 다시 일어나자 좌종사(座從事)에 속해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전사자 가족 후원을 도맡았다. 같은 해 4월에는 이강년이 영춘에서 관군과의 전투로 부상하여 풀숲 속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초저녁에 성금촌(成金村, 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성금마을)으로 들어갔을 때, 죽음을 각오한 이강년의 말을 듣고 그를 위로하였다. 이후 이강년을 토굴에 기거하도록 돕고 이후 수개월 동안 회복을 도왔다. 그 해 9월에는 이강년이 다시 영춘에서 전투를 벌이기 전에 성을 지키는 소임을 맡게 되었으며, 일본군에게서 승리할 수 있는 비계(秘計)를 이강년과 함께 논의하였다. 근거지를 남천(南川, 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으로 옮길 때에는 부대원들에게 많은 양의 소주와 떡, 고기 등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강년이 붙잡히면서 함께 붙잡혔고 충주 감옥에 갇혀 한 달이 넘게 고문과 회유를 받았다. 풀려난 이후는 은둔 생활을 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원철상(元哲常) 등이 이끄는 의병부대를 지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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